법과 정의는 드라마가 자주 탐구하는 주제다. 한국 사회에서 법은 제도와 절차를 의미하지만, 드라마는 이를 넘어 인간적 정의와 감정적 정의를 보여준다. 법정의 판결, 경찰의 수사, 언론의 보도는 모두 현실적 제약 속에서 이루어지지만, 드라마는 이 장면을 극적 장치로 활용한다. 특히 비밀의 숲, 시그널, 소년심판, D.P., 트리거 같은 작품은 법과 정의가 일치하지 않는 현실을 비판하면서도, 정의란 무엇인가라는 근본적 질문을 던진다.
법정 드라마: 판결이 아니라 질문
법정 드라마는 정의 구현을 가장 직접적으로 다루는 장르다. 그러나 대부분의 작품은 “무죄냐 유죄냐”라는 결과보다, 그 과정에서 드러나는 인간적 고민과 제도의 한계를 강조한다. 비밀의 숲은 검사 황시목을 통해 법정이 아니라 수사 과정에서 법과 권력이 어떻게 얽히는지를 보여줬다. 소년심판은 소년 범죄 재판을 통해, 법이 과연 처벌만으로 정의를 구현할 수 있는지를 질문했다.
드라마 속 판사는 종종 차가운 법조문과 따뜻한 인간적 정의 사이에서 갈등한다. 이는 현실 법조인이 맞닥뜨리는 고민을 드라마적으로 압축한 장치다.
경찰·수사 드라마: 정의의 현장성
시그널, D.P., 라이브 같은 드라마는 경찰과 군의 수사 현장을 집중적으로 다룬다. 여기서 정의는 법정의 판결이 아니라, 현장에서 즉각적으로 이루어지는 선택으로 표현된다. 과거와 현재를 연결하는 무전기 설정(시그널)은 ‘법이 놓친 진실’을 되찾으려는 집요한 시도를 상징한다.
D.P.는 군대 내 탈영병 추적이라는 특수한 배경을 통해, 정의가 단순히 ‘규율 유지’가 아니라 억압적 시스템 속 개인을 보호하는 것일 수 있음을 보여준다. 이처럼 경찰·군 수사극은 제도의 한계를 보완하는 인간적 정의를 강조한다.
언론 드라마: 진실을 드러내는 힘
트리거와 같은 언론 소재 드라마는 법정이나 경찰보다 더 직접적으로 ‘진실’의 문제를 다룬다. 언론은 제도 바깥에서 권력을 견제하며, 드라마는 이를 “정의의 촉발점”으로 묘사한다. 기자가 보도를 통해 숨겨진 부패를 드러낼 때, 그 장면은 법적 판결만큼이나 카타르시스를 제공한다.
하지만 드라마는 동시에 언론의 불완전성과 위험성도 다룬다. 사실 왜곡, 권력과의 결탁, 개인적 윤리 문제는 언론 드라마가 반드시 짚는 주제다. 결국 언론은 ‘절대 정의’가 아니라 ‘정의를 위한 불완전한 수단’으로 그려진다.
현실 법제와 드라마적 정의의 간극
드라마 속 법과 정의는 종종 현실과 어긋난다. 현실에서 법은 증거와 절차를 중시하지만, 드라마에서는 감정적 정의가 우선한다. 시청자는 법적으로는 무죄일 수 있지만, 도덕적으로는 분명히 유죄인 인물의 몰락을 원한다. 드라마는 이 욕망을 충족시키기 위해, 종종 비현실적인 결말을 제시한다.
이는 법이 감당하지 못하는 영역을 드라마가 대신 채워주며, 동시에 현실 법제의 한계를 비판하는 장치가 된다.
법과 정의를 표현하는 상징적 장치
드라마는 법과 정의를 시각적·상징적으로 표현한다. 법정의 높은 단상은 권위를, 무너지는 건물이나 빛바랜 경찰서 간판은 제도의 허술함을 상징한다. 또한 판사의 망치 소리, 경찰서 복도의 어두운 조명, 기자회견장의 카메라 플래시는 모두 정의가 ‘제도·현장·사회’라는 세 층위에서 구현됨을 보여준다.
글로벌 시청자가 읽는 한국식 정의
해외 시청자들은 한국 드라마에서 정의가 ‘법’보다 ‘인간성’에 가까운 방식으로 표현되는 점을 흥미롭게 받아들인다. 오징어 게임의 경쟁 구조, 더 글로리의 복수극도 법적 정의가 실패했을 때 개인적 정의가 어떻게 구현되는지를 보여준다. 이는 한국 드라마의 고유한 정서와 동시에 보편적 메시지를 전달한다.
앞으로의 전망
앞으로 드라마 속 법과 정의는 더욱 복잡하게 다뤄질 것이다. 단순한 선악 구도나 법정의 승패가 아니라, 정의의 다층적 성격—법적 정의, 도덕적 정의, 사회적 정의—가 교차하는 방식으로 확장될 것이다. 특히 디지털 범죄, 인공지능 윤리, 기후 정의 같은 새로운 영역은 드라마의 중요한 주제가 될 수 있다.
결국 드라마 속 법과 정의는 “정의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계속 던지며, 시청자가 현실 세계에서 정의를 다시 생각하게 만드는 거울로 기능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