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드라마를 보다 보면 “또 나왔네”라는 말이 절로 나오는 장면이 많다. 비 오는 날 우산을 씌워주는 장면, 교통사고로 기억을 잃는 주인공, 서로 미워하다가 결국 한 집에 살게 되는 동거 설정, 혹은 시한부 판정을 받고 남은 시간을 불태우는 이야기까지. 이런 전형적인 장치들은 흔히 ‘클리셰’라고 불린다. 클리셰는 진부하고 뻔하다고 비판받지만, 역설적으로 시청자는 여전히 이런 장면에 몰입하고 감정을 이입한다. 그렇다면 왜 우리는 클리셰에 지루함을 느끼면서도 동시에 끌릴까? 이 글에서는 대표적인 드라마 클리셰를 해부하고, 그 기능과 매력을 자세히 살펴본다.
빗속 고백과 우산 씌워주기
“비 오는 날 우산”은 한국 드라마를 상징하는 대표적 클리셰다. 겨울연가 이후 수많은 작품에서 비는 감정을 폭발시키는 장치로 쓰였다. 도깨비에서도 공유가 김고은에게 우산을 씌워주는 장면은 두 사람의 운명적 관계를 시각적으로 보여준다. 비는 현실에서는 불편한 상황이지만, 드라마 속에서는 두 인물을 물리적으로 가깝게 만들고 심리적으로 취약하게 만든다. 시청자는 젖은 어깨와 차가운 공기를 보면서 캐릭터의 고립과 외로움을 느끼고, 우산을 씌워주는 행동에서 보호와 연대의 신호를 읽는다.
흥미로운 점은 이 장면이 “전환점의 암호”라는 점이다. 비가 내리는 순간은 종종 고백, 화해, 이별 같은 관계의 변화를 동반한다. 우산은 단순한 소품이 아니라, 두 사람이 서로를 받아들이거나 밀어내는 상징적 물체다.
기억상실: 관계를 리셋하는 장치
“사고 후 기억을 잃는다”는 설정은 멜로드라마의 전형적 클리셰다. 천국의 계단, 겨울연가 같은 작품에서 기억상실은 사랑과 갈등을 새로 시작하게 만든다. 관객은 과거의 진실을 알고 있지만, 인물은 모르는 상황이 극적 아이러니를 만들며 긴장을 유지한다. 이 장치는 비현실적이라는 비판을 받지만, 감정을 리셋할 수 있는 드라마적 기능이 크다. ‘만약 모든 것을 잊고 다시 만난다면 사랑은 어떻게 될까?’라는 가정을 던지면서, 사랑의 본질이 기억인지 감정인지 묻게 만든다.
최근 드라마에서는 기억상실이 단순한 설정을 넘어 심리학적 트라우마, PTSD 등과 연결되기도 한다. 즉, 클리셰를 현실적 맥락과 접목하려는 시도다.
동거 설정: 강제 밀착과 감정의 성장
“우연히 같은 집에 살게 된다”는 설정은 로맨틱 코미디의 단골 장치다. 풀하우스에서 송혜교와 비가 계약 결혼을 통해 한 집에 살게 되고, 도도솔솔라라솔에서는 고아라와 이재욱이 우연한 사정으로 동거를 시작한다. 동거는 갈등과 친밀을 동시에 생산한다. 부엌에서의 작은 마찰, 청소·빨래 같은 일상적 에피소드가 감정을 쌓게 만들고, 물리적 거리가 줄어드는 만큼 감정적 거리도 좁아진다.
동거 설정의 장점은 시간의 압축이다. 원래라면 수개월이 걸릴 친밀감 형성이 짧은 시간에 가능하다. 시청자는 이 비현실적 전개를 알면서도 캐릭터들의 감정 변화를 설득력 있게 받아들인다.
불치병과 시한부 서사
시한부 설정은 멜로드라마의 강력한 장치다. 미안하다 사랑한다, 하늘에서 내리는 일억개의 별 같은 작품에서 주인공은 죽음을 앞두고 사랑을 확인한다. 시한부는 시간을 압축하고, 삶의 의미를 극적으로 묻는다. 현실에서는 낯설고 무거운 상황이지만, 드라마 속에서는 사랑의 절실함과 인간의 덧없음을 동시에 보여준다.
다만 최근에는 이런 설정이 과도하게 사용되면서 클리셰로 비판받기도 한다. 이에 따라 슬기로운 의사생활 같은 드라마는 오히려 “시한부” 대신 “질병과 함께 살아가는 삶”을 다루며 새로운 방향을 제시한다.
교통사고와 운명의 전환
한국 드라마에서 교통사고는 거의 만능 장치다. 주인공이 사고로 죽거나 다치면서 이야기가 크게 전환된다. 아이리스에서는 자동차 폭발이 음모와 배신의 신호가 되고, 상속자들에서는 교통사고가 주인공 관계를 다시 묶는 계기가 된다. 사고는 갑작스러운 운명적 사건을 상징한다. 관객은 언제 어떤 순간 사고가 터질지 긴장하며 보게 된다.
그러나 남용되면 설득력이 떨어진다. 최근 작품에서는 단순한 사고 대신 사회적 원인(음주운전, 시스템 부실, 안전 문제)을 서사와 연결하며 현실성을 높이고 있다.
삼각관계: 긴장의 삼각 구도
삼각관계는 가장 오래된 드라마 클리셰 중 하나다. 두 남자와 한 여자의 구도, 혹은 반대로 두 여자가 한 남자를 두고 경쟁하는 구도는 긴장을 자동적으로 만들어낸다. 내 이름은 김삼순, 파리의 연인, 별에서 온 그대까지 수많은 작품이 삼각관계를 변주했다.
삼각관계의 매력은 시청자가 어느 한쪽을 응원하며 감정적으로 개입하게 만든다는 점이다. 동시에 주인공이 어떤 선택을 하는지가 시청률과 화제성을 좌우하는 중요한 변수다.
클리셰가 여전히 살아남는 이유
- 즉각적 공감 — 누구나 경험하거나 상상할 수 있는 상황이라 설명이 필요 없다.
- 감정의 과잉 — 현실에서는 부담스러운 장면도 드라마에서는 자연스럽다.
- 예상과 기대 — 시청자는 클리셰를 알지만, 작가가 어떻게 변주할지 궁금해한다.
- 보편적 상징성 — 비, 병, 기억상실, 삼각관계는 세계적으로 통하는 상징이다.
결국 클리셰는 단순히 진부한 장치가 아니라, 시청자와 작가가 공유하는 일종의 문화적 약속이다. 시청자는 그 약속을 인식하고 있으면서도, 매번 새로운 감정으로 참여한다.
새로운 변주와 가능성
최근 드라마는 클리셰를 그대로 쓰기보다 변주하거나 비틀기 전략을 활용한다. 예를 들어, 나의 해방일지는 로맨스 클리셰 대신 침묵과 느린 일상을 전면에 배치하며,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는 법정 클리셰를 자폐 스펙트럼 시점으로 재해석했다. 익숙한 장치를 파괴하거나 다른 관점에서 뒤집을 때, 시청자는 신선함과 친숙함을 동시에 느낀다.
앞으로 드라마는 여전히 클리셰를 사용할 것이다. 하지만 그 방식은 단순 반복이 아니라, 시대의 감수성을 반영하는 창의적 변주로 나아갈 가능성이 크다. 결국 클리셰의 힘은 “뻔하지만 여전히 보고 싶은” 인간의 보편적 욕망에서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