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드라마는 오랫동안 지상파 방송을 중심으로 소비되었다. 매주 정해진 시간에 방송을 기다리며 본방 사수를 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그러나 넷플릭스, 디즈니플러스, 티빙, 웨이브 등 OTT 서비스가 본격적으로 자리 잡으면서 드라마 소비 방식은 근본적으로 달라졌다. 시청자는 더 이상 방송 시간을 기다리지 않고, 원하는 시간에 원하는 만큼 시청한다. 제작자 또한 글로벌 시장을 의식하며 기획하고, 플랫폼은 작품을 전 세계로 동시에 배급한다. 이 글은 OTT 시대에 드라마 소비가 어떻게 변화했는지, 그리고 그 변화가 한국 드라마 산업과 문화에 어떤 의미를 갖는지 분석한다.
지상파·케이블 시대의 소비 방식
과거 드라마는 정해진 시간에 방송되는 지상파 편성에 의존했다. 겨울연가, 대장금, 파리의 연인 같은 드라마는 매주 2회 방영을 원칙으로 했고, 시청자는 본방을 놓치지 않기 위해 TV 앞에 앉아야 했다. 재방송이나 DVD, 불법 다운로드가 보조 수단이었지만, 본방 사수가 주된 시청 방식이었다.
케이블 채널이 성장하면서 응답하라 1988, 미생 같은 작품이 탄생했지만, 여전히 방송 편성 시간은 시청 경험을 규정하는 절대적 요소였다. 이 시기 드라마 소비는 ‘시간적 공동체성’을 형성했는데, 같은 시간대에 많은 사람이 동일한 장면을 보고 다음 날 이야기하는 문화가 일반적이었다.
OTT의 등장과 시청자 행태 변화
넷플릭스와 같은 OTT 플랫폼의 등장은 드라마 소비의 ‘시간적 구속’을 무너뜨렸다. 시청자는 더 이상 편성표에 맞출 필요 없이, 원하는 시간에 원하는 장소에서 콘텐츠를 즐길 수 있게 되었다. 스마트폰, 태블릿, 노트북을 통해 이동 중에도 드라마를 시청하는 것은 이제 일상적인 풍경이다.
이 변화는 시청자의 ‘콘텐츠 선택권’을 크게 확대했다. TV 앞에서 수동적으로 기다리던 방식에서, 능동적으로 작품을 고르고 시청 시간을 조절하는 방식으로 이동했다. 특히 10대~30대 세대는 본방 사수보다 OTT 플랫폼에서 몰아서 보는 방식을 선호한다.
정주행 문화의 확산
OTT 시대를 대표하는 키워드는 ‘정주행(Binge-watching)’이다. 과거에는 한 주에 두 편만 볼 수 있었지만, 이제는 시즌 전체를 한 번에 공개하는 경우가 많아졌다. 오징어 게임은 9부작 전체가 한 번에 공개되었고, 전 세계 시청자가 단기간에 몰입하며 열풍을 일으켰다.
정주행 문화는 서사 구조에도 변화를 가져왔다. 매회 끝날 때 클리프행어를 두어 다음 주를 기다리게 하던 전통적 방식 대신, 한 번에 몰아보는 시청자에게 맞춰 더 빠른 전개, 긴장감 있는 연결 구조가 중요해졌다. 이는 드라마의 제작·편집 방식까지 바꾸었다.
제작 시스템의 변화
OTT 플랫폼은 제작비를 대폭 투자해 높은 퀄리티의 작품을 제작한다. 전통 방송사 시스템에서는 드라마가 광고 수익에 크게 의존했지만, OTT는 구독료 기반이므로 더 대담한 실험과 장르적 다양성을 추구할 수 있다. 킹덤은 사극과 좀비라는 이색적 결합으로 성공했고, 지옥, 수리남 등도 기존 방송사에서는 어려웠을 법한 소재를 다뤘다.
또 다른 변화는 ‘시즌제’다. 한국 드라마는 오랫동안 16부작, 20부작 단일 시즌이 일반적이었지만, OTT는 미국식 시즌제 도입을 촉진했다. 킹덤 시즌1·2, D.P. 시즌1·2처럼 이어지는 구조는 시청자의 장기적 관심을 유지시킨다.
글로벌 동시 배급과 한류 확산
OTT는 드라마를 전 세계에 동시 공개할 수 있는 시스템을 갖췄다. 과거에는 한국 드라마가 해외에 진출하기까지 수개월이 걸렸지만, 이제는 한국과 미국, 일본, 유럽이 동시에 시청할 수 있다. 이로 인해 한국 드라마는 ‘한류 콘텐츠’에서 ‘글로벌 메인스트림 콘텐츠’로 성장했다.
특히 오징어 게임은 세계 동시 공개를 통해 단숨에 글로벌 1위에 올랐다. 이는 OTT가 한국 드라마의 지리적·문화적 한계를 뛰어넘게 만든 대표 사례다.
산업적 효과와 경제 구조의 전환
OTT 시대는 드라마 산업의 경제 구조도 바꾸었다. 방송사-광고주 중심에서 플랫폼-구독자 중심으로 재편되면서, 드라마는 광고보다 구독자 유지와 확보에 더 초점을 맞추게 되었다. 이는 스토리와 연출에 대한 투자를 확대하게 만들었다.
동시에 OST, 굿즈, 관광, 패션, 뷰티 등 파생 산업도 OTT와 결합해 글로벌 시장을 겨냥한다. 드라마 한 편이 글로벌 팬덤을 형성하고, 그 팬덤은 산업적 확장으로 이어진다.
앞으로의 전망과 과제
OTT 시대의 드라마 소비 변화는 계속될 것이다. 그러나 몇 가지 과제가 남아 있다. 첫째, 콘텐츠 과잉으로 인한 선택 피로. 둘째, 지역별 규제와 플랫폼 독점 문제. 셋째, 지나친 제작비 경쟁으로 인한 산업 불균형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OTT는 드라마 소비를 혁신했고, 한국 드라마가 세계 무대에서 경쟁할 수 있는 기회를 열었다. 앞으로는 플랫폼 간 협력, 장르적 실험, 글로벌 공동 제작이 한국 드라마를 더욱 성장시키는 열쇠가 될 것이다.